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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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이 보아요~!^^

2월28일로 8명의 여성이 ‘노쇼핑’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된다. <한겨레21>은 지난해 말 주부들이 주로 모이는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을 통해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했다. 8명의 여성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집안의 물건(재고) 조사와 2010년 1년 소비 계획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노쇼핑’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노쇼핑 블로그(blog.hani.co.kr/noshopping)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년 동안 계속 진행된다. <한겨레21>은 2010년 몇 차례에 나눠 이들의 여정을 추적할 예정이다. 편집자

» 지름신이여 안녕, 쇼핑이여 안녕

“사자. 어차피 살 거 아니었나.” ‘마고할미’(43·강원 원주·참꽃작은학교 교사·4인 가족)는 방문한 사이트에서 녹즙기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보자 눈이 번쩍 띄었다. 제조사 사이트를 찾아가 녹즙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5년간 써오던 녹즙기는 막음 장치가 고장났는데 제조사가 없어져서 AS를 못 받고 있었다. 2009년 12월 중순이었다. “이거 마지막 지름이야.”

‘썸바디’(46·경남 울산·전업주부·3인 가족)는 2009년 12월31일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날 봐둔 플랫슈즈를 클릭해 들어갔다. 전시 상품을 50% 가격에 파는 사이트였다. 12월30일 “내일도 안 팔렸으면 내 거다” 다짐했더랬다. 상품은 팔리고 없었다. 고마우면서 한편으로 억울했다. 완전히 새건데. 내일부터 1년간은 쇼핑 안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

포도주는 필수품인가, 막걸리는 사치품인가




살 것을 산 마고할미에게도, 결국 못 사고 만 썸바디에게도 동시에 2010년 1월1일 0시, 출발 사인이 떨어졌다. “2010년 한 해는 쇼핑을 하지 않겠습니다.” 서울 노원구의 ‘경월소주’(35·결혼 6년차·공무원 시험 준비 중), 충북 청주의 ‘도꼬마리’(30대 후반·맞벌이·4인 가족), 대전의 ‘버들치’(46·씨앗도서관 운영자·4인 가족), 강원 원주의 마고할미, 경기 고양의 ‘송송책방’(34·출판편집자·미혼), 경남 울산의 썸바디, 인천의 ‘슈퍼스타’(34·전업주부·3인 가족), 서울 서대문구 ‘우띠맘’(37·맞벌이·4인 가족), 이렇게 전국 여덟 가구가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마라톤을 시작했다.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는 생필품‘만’ 구매하고 1년을 지내는 프로젝트다.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그 이름도 찬란한 ‘사치’다. 휴대전화 고리가 너덜너덜한데 이 고리 정말 갖고 싶은걸? 안된다. ‘갖고 싶다’는 구입 사유가 될 수 없다. 지갑을 열기 전에 스스로에게 ‘쓸모 강박’을 강요해야 한다. 휴대전화 고리가 없다고 해서 전화가 안 되는 건 아니잖은가. 어제 산 귤이 집에 있긴 하지만, 귤 20개에 3천원이라 싼데? 아니다. 구매시 ‘필요’는 가격보다 우선한다. ‘쇼핑 안 하기’는 물건의 거품을 거두고 ‘필요’에 탐닉하는 일이다.

그러나 각자에게 생필품의 기준은 다 다르다. <굿바이 쇼핑>(Not Buying It·2005)을 통해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경험을 기록한 미국의 주디스 리바인은 포도주를 두고 고민했다. 그의 동거인인 폴은 이탈리아인으로, 포도주는 생필품이라고 주장했다. 주디스에게는 사치품으로 보였다. 이들은 머리를 싸매고 토론을 했고 포도주를 사치품으로 분류했다. 폴은 그 뒤 포도주를 집에서 담갔다. 비슷하게 우띠맘은 막걸리를 어떻게 할지 의문스러웠다. “이슬님은 어떻게든 1년 동안 결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민의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유산균이 있어서 몸에도 결코 나쁘지 않다는 막걸리는?” 거기다 밖에 나가서 마시지 않으려면 집 안에서 마셔야 할 텐데. 우띠맘은 막걸리를 포기하지 못했다. 손님 접대는 집에 담가둔 매실주와 오미자주를 이용하기로 했다.

프로젝트팀원은 차이는 있지만 거개가 ‘쇼핑 의존증’을 갖고 있다. 그 위 단계인 ‘쇼핑 중독’도 꽤 된다. 그 쇼핑은 주로 인터넷 쇼핑이다. 경월소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마고할미는 연년생 딸 둘의 입시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인터넷 쇼핑으로 풀었다. 우띠맘은 쇼핑에 중독되는 기미가 보여 신청했다. 썸바디는 ‘향수 컬렉터’이자 ‘명품 중독자’라고 고백해왔다.

사도 사도 살 게 있네

썸바디는 ‘네이버’는 알아도 실제 공간의 이웃은 아무도 모른다. PC통신 1세대로 일찍 컴퓨터를 접했고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강아지 동호회 회원들과 펜션을 예약해서 모임을 열고, 영화 동호회 회원들과 약속을 잡아 영화를 보고, 향수 블로그의 이웃들과 외국 향수 여행을 떠난다. 블로그 이웃과 몇 시간씩 전화 수다를 떤다. 얼굴 모르고 전화 수다만 떠는 사람도 있다.

이웃이 두드리지 않는 집을 택배기사들이 드나든다. 하루에 각 나라에서 6~7개씩 택배가 도착하기도 한다. 택배회사별로 배달기사들과 안면을 익혔다. 연말에는 택배기사를 위한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 택배를 받아주는 경비 아저씨도 챙겼다.

집 밖을 나가는 일은 드물다. 식료품도 마트에 나가서 사는 대신 배달을 시킨다. 일주일에 두 번, 성당 모임과 봉사활동 모임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의 다다. 나갈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명품이 아니면 사지 않았다. 괜찮다 싶으면 색깔별로 옷을 구매하는 일도 잦았다. 명품 챙모자를 조금씩 다른 디자인으로 네 가지를 모으기도 했다. 쓸 일이 없으니 그 모자를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한다.

» ‘우띠맘’은 비닐팩을 사지 않는다. 비닐봉지를 씻어 재활용한다(왼쪽). 고장난 컴퓨터는 직접 손보기로 했다.

향수는 1천 개가량이 장식장에 모여 있다. 빈티지 향수를 모은다. 주로 외국과 거래를 하는데 배송료로만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 만한 돈을 썼다. 백화점의 향수 코너에서 구매왕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이벤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백화점 점원이 연말에 예쁜 떡을 직접 들고 와서 전해주었다. “아이가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걱정스럽더라고요. 이웃들은 아무도 안 오고… 생활을 바꿔야겠죠.” 썸바디의 1년 계획에는 ‘밖으로 나가자’도 포함되었다.

‘과소비’란 기우뚱하다. 균형이 안 잡힌 생활이다. “집을 저울에 달면 부엌 쪽으로 기울 것 같아요.” 마고할미는 참꽃작은학교의 생태 교사다. 생협에서 음식을 구매한다. 소금이 석면 플레이트에서 만들어진다는 뉴스를 들으면 놀라서 생협에 원산지 확인을 요구하기도 하는 열혈 회원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직접 쿠키를 굽는다. 대기업은 아예 믿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슬로푸드 운동도 하고 있다. 이것이 부엌을 무겁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장을 담가 6개월에서 1년 동안 숙성시킨다. 된장·고추장은 작은 텃밭에 묻어두었지만 고추·무 장아찌에 유자차, 모과차, 초피 등을 담근 단지가 부엌에 가득하다. 지난해는 탱자 효소와 장기전을 시작했다. 3년 반을 숙성시키는 것이다. 장을 담은 용기는 냄새가 배니까 그 용도로밖에 쓸 수 없다. 장을 비운 용기들도 찬장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해를 지나면서 부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재수하는 큰아이와 고3 작은아이에게 음식을 나르느라 반찬통이 수십 개 쌓였고, 곰국을 끓이기 위해 용도별로(두께가 다르다고 한다) 크기별로 곰솥이 5개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국을 얼리는 용도로 쓰는 냉동실까지 있다.

사도 사도 살 게 더 있다. 100%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어 젊은 주부들이 열광한다는 명품 압력솥을 백화점에서 반값 할인으로 팔고 있었다. 가게 앞은 아줌마들로 북새통이었다. 얼른 사들고 왔는데 그걸로 밥솥이 5개가 됐다. 부엌에는 날마다 쓰는 압력솥과 피곤할 때 사용하는 전기밥솥이 나와 있고, 손님 올 때 쓰는 대형 압력솥, 밥맛 좋다고 해서 산 옹기로 된 밥솥이 싱크대 안에 들어 있다.

“애 아빠 양복은 바짓단이 다 헐었는데, 애들 학원비·과외비로 엄청 나가기 시작하니까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더라고요. 비싼 줄 모르고, 할인이라는 말에 홀려서 사게 된 거죠. 남편과 등산을 자주 가요. 남편이 그래요. 등산 다닐 때처럼 무겁게 다니는 게 너무 싫다. 가볍게 살자.” 마고할미는 부엌 살림을 3분의 1로 줄이기로 했다.

우띠맘은 소형 가전제품을 많이 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단계에 맞춰서 나오는 신기한 상품들을 구매했다. 부엌용품도 많다. 도깨비방망이, 미니오븐, 착즙기 등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들을 샀다. “배달되면 신기해서 한 번 쓰고는 그 뒤로 뒤돌아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더 이상 가전제품에 흔들리지 말자. 그의 1년 계획이다.

1월7일 손떨림을 고백하다

2009년 마지막 일주일을 프로젝트팀은 1년 계획을 세우며 지냈다. 그에 앞서 ‘재고 정리’가 이루어졌다. 경월소주는 재고 정리를 하며 잊고 있던 물건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창고 속에서 잊고 있던 소금 반포대가 나올 땐 정말 놀랐습니다. 남편을 고대로 절이고도 남을 분량의 소금을 무엇에 쓰면 좋을까요.” 경월소주의 1년 계획의 1번은 ‘쟁이지 않기’가 되었다. 경월소주는 생활 규모를 더 줄여보자고 액수는 작지만 적금 통장까지 만들었다.

2010년이 밝아오고 얼마 안 지난 1월7일 쇼핑 의존증, 쇼핑 중독자들에게 금단 증상이 왔다. “돈을 철저하게 아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던 도꼬마리가 맨 처음 고백해왔다. “(회사에서) 간신히 참고 집에 도착했는데,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12시 다 돼서 컴터 앞에 앉아 재즈화를 담고 재즈복 고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네요. 12월부터 재즈를 하고 있는데 운동화가 뻑뻑해서 안 나갔거든요. 넘들은 다 재즈화 신고 하는데 발목 다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며 며칠 전부터 이놈이 마음에 들어와 있네요.… 겨울옷은 왜 이리 세일을 많이 하는지 이월상품 85%까지 세일한다며 저를 유혹하는데 코트도 하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너무 갈등이 생기기에 컴퓨터를 확 꺼버렸습니다. 언제든지 로그인하면 장바구니에서 날 잡아잡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큰일이네요.”

누가 먼저 고백하나 싶었다는 ‘갱생원 대화의 시간’ 분위기. “나는 말이죠”의 경험이 필수인 충고가 쏟아졌다. 썸바디는 “‘노쇼핑’ 이렇게 한번 붙여보시면 어떨까요? 모니터에. 저는 오래전에 ‘정신 차려 썸바디…’ 이렇게 붙여놓은 적이 있어요”라고 했다. 송송책방 역시 자신의 일이었다. “저는 지난해 조깅을 잠깐 하면서 운동화가 절실했습니다. 보나마나 비싼 신발 사놓고 운동 안 할 게 뻔했지요. 그래서 30일 동안 뛰면 사줄게, 라고 약속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조깅도 운동화도 잊었습니다. 절대 사면 안 돼, 보다는 보상으로 물건을 걸면 어떨까요. 12월부터 재즈 시작하셨으면, 3개월 꾸준히 하고 나면 사자… 정도로요. 3개월 꾸준히 할 정도면 그건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으로 분류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경월소주는 단호했다. “습관, 맞습니다! 물건 사기 전에 냉장고에 써붙여놓고 3일간 오며 가며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 물건이 꼭 필요해서 사려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단호함 역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니, 올해는 아껴서 얼마를 더 모을 거야라는 거창한 생각보다, 정말 필요 없는 것을 사려는 그 습관, 물건에 대한 환상들을 버리는 데 초점을 두려 해요.”

도꼬마리는 다행히 결제를 클릭하지 않았다. “회사 직원 사이에 택배가 많이 오기로 유명했는데 최근엔 택배 아저씨 구경을 못해봤어요. 택배 받는 낙으로 살다가 안 오니까 심심해요. 일부러 택배실을 어슬렁거려보기도 한답니다.”

» ‘경월소주’는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다. 읽은 책은 그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뒤로 고장난 컴퓨터가 보인다.

소곱창 대신 돼지곱창, 통닭 대신 닭볶음탕

경월소주는 인터넷 쇼핑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1·2월까지 그 좋아하는 쇠고기를 모두 포기했다. 소곱창은 6천원인 돼지곱창으로 해결했다. 통닭이 먹고 싶을 때는 4300원짜리 닭을 사서 닭볶음탕을 하고, 삼겹살이 먹고 싶을 때는 한 근에 700원짜리 뒷다리살을 사와서 구웠다. “장어도 정말 좋아하는데, 어머니한테 양념해서 달라고 했습니다.”

썸바디는 두 달간 시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쇼핑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유혹을 이겨낸 장한 경험을 만들었다. 병실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향수 경매가 끝나가는 과정을 담담히 지켜보았다. 브라질의 판매자가 내놓은 상품은 210달러에 낙찰되었다. 썸바디 생각에는 300달러의 가치는 있는 향수였다. 클릭만 했으면 220달러에 썸바디에게 낙찰될 수 있었다. 향수 동호회를 통해 아는 친구가 전화를 건다. “언니, 향수 고프지 않아? 이건 샀어야지.” “인연이 아닌가 보다.” 향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어 그의 1년 계획에는 ‘한 달에 향수 하나만 산다’가 있다. 그나마 하나도 안 산 게 두 달째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의외로 컨트롤하기 쉽다. “엄마가 왜 좋으냐고 하면 뭐 사주니까”라고 하던 마고할미의 아이들은,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필요 없다”고만 했다. 이사가는 새집에는 새로 산 물건이 없다.

플래시 마니아인 우띠맘의 아이는 “AA건전지 떨어진 게 언젠데”라며 짜증을 냈다. 버들치는 여기에 일침을 박았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순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다 사주는 부모로 바꾸든지.”

신기하게도 필요한 물건은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샴푸가 떨어지면 샘플이 굴러나오고, 그마저 없으면 비누를 주말 장 보기 전까지 쓰면 되고요. 냉장실과 냉동실에 있는 먹을거리들은 주말이 되기 전까지 소비하고도 남죠. 장 보기로 정해진 날까지 따로 쇼핑을 안 해도 갖춰진 물건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고, 또 머리를 굴리기에 따라 더 풍요로운 식탁도 만들어진다는 거죠. 그동안 제가 게을렀을 뿐. 채소 종류가 떨어져 저장고를 다시 정리해보니, 세상에, 잊고 있던 울릉도 마른 나물 5종 세트를 발견하게 되는 식이지요. 저도 언젠간 헬렌 니어링의 책에 나온 것처럼, 냉동실에서 나온 수년 된 콩으로 싹을 틔워보려 할지 모르겠어요. 하여간 그렘린처럼 물을 만나니 미친 듯 불어나는 마른 나물에 밥상이 더 풍요로워졌네요.”(경월소주)

“쟁여놓으니 불안하게 되었어요”

프로젝트팀은 있는 물건을 팔았다. 1년 동안 쓸 것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쟁여놓아야 할 것을 팔아버렸다. 경월소주는 지난해 미친듯이 사모았던 옷을 중고장터에 팔았다. 수중에 들어온 돈이 70만원에 이르렀다. 자주 이용하는 서울여대 도서관에는 책을 20권 기증했다. 재고를 정리하고 나니 옷의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박스 2개와 옷장 한 통이 없어졌다. 우띠맘은 아이용 전동차를 내놓았는데,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많이 걸려왔고, 결국 용인에서 차를 끌고 온 아주머니가 받아갔다. 이런 일이 이젠 우습다. “용인에서 오느라 기름값이 더 들었을 텐데요.”

우띠맘은 물건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장을 보고 먹을 것이 쌓여 있으면 뿌듯했어요. 부자 된 느낌요. 그런데 이번 설 전에 식료품이 배달돼 왔는데, 불안하더라고요. 이걸 어떡해야 하나. 다 먹어야 하는데.” 남편은 술을 줄이고, 고픈 술은 집에서 해결한다. 그래서 남편과 막걸리를 두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연초부터 시작한 도시락을 싸가는 횟수도 늘었다. 사흘에 한 번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이틀에 한 번이다. “2007년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참 이상해요. 중간에 돈을 만들어 메워도 마이너스 액수가 줄어들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것이 1월에 조금 메워졌어요. 지금대로라면 올해 안에 다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감을 모으는 마고할미는 자신의 ‘소유욕’도 다시 생각해본다. “원주 사는 한 동화작가의 작은 팬클럽을 하는데, 그분 집에 놀러가면 의외로 책이 없어요. 그분이 번역한 책이 없어져서 속상하다고 말했더니, 집에 하나 남은 책을 내주시더라고요.”

여전히 문제는 많다. 경월소주에게는 애물단지 자동차가 있고, 남편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썸바디는 이제 시아버지 병간호에서 벗어난 뒤 언제 결제를 누를지 몰라 조마조마한다. 마고할미는 여전히 물건들과 이별하는 것이 어렵다. “무엇에 홀려 있었는지, 그때 내 마음은 어떠했는지, 아직도 지난해, 지지난해 또 그 이전의 상황들에서 헤매고 있어요. 물건을 살 때의 내 마음 상태를 완전히 잊지 못하겠나 봐요. 하나하나 씻어내고 보듬고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네요. 물건 정리에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아요.”

문제는 3월에 갑자기 폭풍처럼 닥칠지 모른다. 경월소주는 라디오를 힘차게 닦다가 고장나서 수락산에 있는 AS 센터에 가서 고쳤다. 때리면 되던 컴퓨터는 사망했다. 하드가 문제란다. AS 기사의 대답은 “사는 게 낫다”였다. 냉장고, 오븐, 밥통, 세탁기, 침대…. 결혼하면서 마련한, 이제 6년 된 물건들이 죄다 삐걱댄다. 컴퓨터도 결혼하며 마련한 거다. 억울하다. 왜 이렇게 가전제품의 수명이 짧은 거지? 이것도 음모가 아닐까? 그리고 왜 결혼하면서 이것들을 다 샀는지 이상하다. 온돌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만나 결혼했으면서 왜 침대를 샀을까. 재활용품점 상품은 또 왜 그렇게 비싼가. “예전에 친구랑 냉장고를 보러 갔는데, 양문형 새 제품도 70만~80만원 하는데, 낡은 오래된 냉장고를 20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공짜로 수거해서 조금 수리하고 파는 것 아닌가요?”

정수 5ℓ에 폐수 20ℓ

없을 때 창조력이 발생한다. 사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대체품을 찾는 것은 조금 노력을 들인 일이고, 있던 것을 고쳐쓰는 것은 창조력이 발동하는 일이다. 그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경월소주는 말한다. “쟁여놓은 물건이 다 떨어질지 모르는 3월이 기대되긴 합니다만, 글쎄요. 그때쯤이면 뭔가 또 다른 노하우로 아끼며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버들치는 정수기의 폐수를 받아서 쓴다. “저는 몰랐는데 어머니 집에 갔더니 정수기의 호스를 빼놓았더라고요. 알아봤더니 5ℓ 정수를 하면 20ℓ 폐수가 나온답니다. 설치기사는 폐수가 지하수로 흘러가게 호스를 연결해놓지요. 이사하면서 설치할 때 호스를 앞쪽으로 빼달라고 해서, 그 물을 받습니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요.” 과소비는 정수를 위해 흘러넘치는 ‘폐수’와도 같다. 필요한 하나를 위해 필요하지 않은 물품이 두 배, 세 배, 네 배가 낭비된다.

프로젝트팀은 무사히 1년을 날 수 있을까? 경월소주, 도꼬마리, 마고할미, 버들치, 송송책방, 슈퍼스타, 썸바디, 우띠맘의 생활은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2010년을 즐겁게 굿바이하는 날까지, 굿바이 쇼핑, 굿 럭!

세계의 ‘안 사기’ 운동

지구를 위해 소비문화에 대항하다

추수감사절(11월 넷쨋주 목요일)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애드버스터스 미디어재단이 1992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추수감사절은 북미 최대의 쇼핑일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흥청망청한 파티가 끝나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쇼핑에 대한 허탈감에 빠질 법한 날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의미는 더해지고 멀리 퍼져갔다. 2008년에는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자본논리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65개국 넘게 동참했다. 반성했다면 며칠 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크리스마스’로 이어진다. 이는 2001년 캐나다의 메노파(검약을 생활신조로 하는 기독교 분파)가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하루이틀론 부족하다. 미국의 프리랜서 작가 주디스 리바인은 2004년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천했다. 2003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쇼핑백을 양손에 가득 들고 가다 부닥친 짜증스런 상황이 프로젝트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눈 섞인 물웅덩이에 떨어진 장갑을 주우려고 몸이 기우뚱한 찰나 쇼핑백 속의 물건이 진창으로 쏟아진다. 주디스는 갑작스럽게 결심한다. “난 이제 사지 않겠어.” 2003년 9·11 이후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소비가 애국’이라는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작심에 한몫했다. 두려움에 떠는 시민들이 소비하지 않을까봐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걱정하고 나섰다. “의연하십시오. 식당에도 가고 쇼핑도 하고 말입니다.”(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연설)

리바인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묻는다. “구매한 물건과 (구매) 경험이 만드는 영역을 벗어나서도 사회적 삶, 공동체, 가족과의 유대, 일, 문화와의 관계, 정체성, 나아가 나 자신이 살아남을까? 그렇게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끊을 수 있을까?”

‘콤팩트’(Compact)가 2006년 실천한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는 좀더 선언적이다. 콤팩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주 전문직 종사자 10가구의 모임이다. 이들은 △환경을 보호한다 △미국의 소비문화에 대응한다 △글로벌 산업에 저항한다 △지역 산업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명시했다. 쓰레기를 줄이고(trash compact-er), 삶을 단순화(calm-pact)하기 위한 실천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돈을 절약한다 △소비주의에 저항한다 △환경친화적이 된다 △대형 마트에 가지 않는다 △불필요한 잡동사니를 없앤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지구를 위해서 고안됐다. “식품·의약품·샴푸 등 소비재, 양말과 속옷 등의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상품을 사지 않는다. 아이의 잠옷, 이웃의 선물, 자선 물품, 동네 가게의 꽃 등은 예외가 될 수 있다. 전문적 예술 상품은 안 되며, 다운로드받을 수 없다면 비디오는 빌려봐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나누며, 지구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 안 하기의 급진적인 방식으로는 ‘프리거니즘’(freeganism)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 최소한으로만 참여한다. 그것이 지구 자원을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길이다. 이들은 주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취한다. 대학가에서 이사철에 버려진 가구나 옷을 수집해 ‘의’를 해결하고, 레스토랑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식’을 해결하며, 빈집 스쿼팅(무단 점유)을 통해 ‘주’를 구한다. “너희가 먹다 남긴 것은 먹어도, 너희의 쓰레기 같은 제품은 사용하지 않겠다.” 프리건들이 나눈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참고 자료: <굿바이 쇼핑>(Not Buying It·2005), www.bbc.co.uk/dna/h2g2/A25871141

‘경월소주’의 가계부

1·2월 의류구입비 ‘0’원

주식·부식도 지난해엔 버려지는 것이 많았습니다. 냉장고 채소칸을 한 달에 두 번 이상 집중 청소해야 할 정도로 이상한 물이 항상 고여 있었어요. 채소를 얼마나 많이 썩혀 버렸던지.

가계부를 비교해보니, 올해 물가가 많이 올랐더군요. 1800원 하던 1ℓ짜리 우유가 2500원 정도가 되어 있네요. 파 한 단도 1500원이면 샀고 애호박도 1천원 안팎이었는데, 올해 2월 애호박값은 2350원. 그럼에도 소비가 줄어든 이유는 당장 먹을 것이 아니면 안 샀기 때문이에요. 집에 있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또 메모해간 것 이외에는 절대로 사지 않았어요. 그렇게 3만원을 넘기지 않도록 노력했죠. 메모해간 것도, 가서 필요 없다 싶음 내려놓았고요. 무 같은 건 단위그램당 비싸더라도 소분된 걸 구입했어요. 그래야 버리지 않으니까요. 그 결과 깨끗한 채소칸을 유지하는 성과도 더불어 얻었네요.

» ‘경월소주’의 가계부

외식비는 제 낙이던 소곱창에 소주, 그리고 초밥을 한 번도 먹으러 가지 않았더니 좀 덜 들었죠. 소곱창이 너무 먹고 싶던 1월의 어느 날 집 앞 포장마차에서 돼지곱창과 오돌뼈, 소주를 사오며 좀 서글퍼지기도 했는데, 가계부를 보니 흐뭇합니다. 술은 지난해에는 와인에 버닝하는 바람에 좀 많이 들었네요. 올해는 한 번도 사지 않았습니다. 가끔 단골 와인숍에서 할인 문자가 오거나, 남편의 셔츠에 와인 얼룩이 져 있으면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한 달 소주 2병, 맥주 2병, 막걸리 2병의 약속을 지키렵니다. 밖에서 말고 집에서요. 이것도 자제해야 할까요? 집에서 밀주라도 담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간식으로 홈플러스 딸기파이에 버닝해서 버린 내 돈과 붙어버린 군살들. 3월엔 기필코 간식비 제로를 만들어보렵니다.

통신비는 어떻게 해봐도 참 안 줄어드네요. 사회생활 하는 남편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제 것은 힘껏 줄여봐야겠어요. 지난해엔 택시도 밥 먹듯이 탔네요. 지난해 3월 넘어가면서 택시비가 더 가관이 아니더군요. 원인은 밖에서 하는 음주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동네 친구들은 집에서 주로 보고, 사회생활 하는 친구들은 저희 집에서 볼 땐 제가 요리해주고 밖에서 만날 땐 꼭 친구들이 계산하네요. 그래서 용돈도 줄었습니다. 그 밖엔 제 필요에 따라 사는 책값을 제 용돈에 넣는데, 올해는 책도 사지 않아서 용돈이 별로 안 들었어요. 주로 도서관에 많이 있었는데, 집 앞이라 모든 식사는 집에서 해결하고요. 제 용돈은 정말 많이 쓰지 않았네요.

지난해 이맘때 쇼핑에 열폭해서 의복비 중 대부분이 제 것. 정말 덮어놓고 사다간 거지 꼴을 못 면하겠습니다. 올해는 옷을 하나도 안 샀어요.

지난해엔 가계부를 쓰면서도 그것이 남들만큼 살고 있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비교 대상인 ‘남’이 누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깨닫습니다. 남들만큼 쓰며 누리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만 쓰며 필요 없는 소비를 안 하는 게 나답게 사는 거라는 걸요. 낯 뜨겁도록 쓸데없는 소비를 많이 한 지난해 가계부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좀더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는 3월이 기대되네요.

경월소주·주부이자 공무원시험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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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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